나는 글을 잘 못 쓴다. 간단한 에세이, 이메일 작성을 하는데도 많은 시간 고민 하게되고, 에너지를 소모해야하니 글 쓰기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글쓰기는 늘 어렵다.
왜 이리도 어려운걸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내내 독서나 학업은 내팽개쳐두고 비디오 게임, 컴퓨터 게임에만 몰입했기 때문인 것 같다. 독서라고 해봐야 캐쥬얼한 소설 정도? (물론 컴퓨터를 사기 전에는 남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한참 가치관이 형성될 시기에 좋은 책들을 읽고 음미하지 못했던 것이 참 아쉽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 해도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세턴을 하고 있겠지만ㅎㅎ)
고3 때 자연계열을 택했다. 이른바 6차 교육과정 마지막 ‘수, 과, 외 꼼수'(수학, 과학, 외국어 영역 점수만 인정하는 대학을 선택하는 전략)를 썼다. 그래서 언어영역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2학년 때도 안 했으니, 내 인생에서 언어영역 공부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사실 올인이라는 도박이었지만 43명중 40등도 해봤던 나는 우여곡절 끝에 공과대학교에 진학한다.
공과대학교 시절 수강했던 교양과 전공과목에는 에세이, 라이팅 과제와 시험이 거의 없었다. 전공도 수학 문제를 푸는 시험이 대부분이었으며 책이라고 해봐야 여전히 캐쥬얼한 소설만 읽었다.
군복무 시절에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장에 있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직군 특성 상 일과가 끝난 이후에도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때 쓴 메모와 일기가 꽤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습관 덕분에 완전히 죽어버린 생각하기, 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재미난 사실은 이때 까지만 해도 글을 못 쓴다고 불이익을 당한다거나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글을 못 써서 불이익을 겪기 시작한 것은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해서 디지털미디어학과(신문방송학과)로 복수전공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미디어 관련 과목을 많이 수강했는데 난생처음 받아보는 에세이 과제에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글쓰기 과제가 웬 말인가?
심지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모두 공개하고 발표할 때도 있었다.
에세이를 완성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글을 썼다. 하지만 단시간내에 늘리 만무하다. 열심히 새벽질하며 에세이를 썼지만 -왠지 별로 노력도 들이지 않은 것 같은데 신선하고 칼날 같은 에세이를 써오는- 파릇파릇한 후배님들을 바라보며 패배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이 느낌은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도 계속된다. 이 때 생긴 버릇이 마감 직전까지도 글을 되새김질하며 고치고 또 고치는 행동인데 문장력도 형편 없었고 글쓰기에 재능도 없었기 때문에 생긴 버릇같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유
학부를 졸업할때까지 최대한 많이 읽었다. 여전히 글쓰기는 부담스러웠지만 스마트폰을 구매한 다음부터는 트위터로 140자 글쓰기를 즐겼다. 단상이나 간단한 메모를 개인 트위터에 올리는 일이 많았는데 트윗이 쌓이면 괜찮은 글감이 되기도 했다.
대학원에 와서는 글을 읽을 일도 쓸 일도 훨씬 많아졌다. 이때부터는 거의 모든 수업이 논문 작성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논리적인 글쓰기, 목차 짜기를 연습하게 되었다.
두 학기를 다니며 소논문을 두 편 썼는데 간결하고 핵심만 정확히 쓰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더 늦기 전에 깨닫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잘 쓴 논문은 아니었지만, 소논문을 A부터 Z까지 혼자 써보며 마라톤식 글쓰기의 호흡법을 맛보았다.
2013년 하반기에는 팀 블로그를 시작하며 평소보다 더 많은 글을 썼다.
개인 블로그라면 대충 썼을 내용들도 공들여서 작성했다.
나는 디자이너인데 왜 쓰기에 집착했던 것일까?
두서는 없지만 그 생각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하필이면 샤워 도중에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편인데 나오자마자 바로 트위터나 에버노트에 메모한다. 왜? 나중에 좋은 글감, 작업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 여전히 내 어휘력은 부족하고 적절한 비유를 집어넣는 센스가 부족하다. 하지만 비유는 개그와도 같아, 적절치 못한 개그, 자신 없는 개그, 타이밍이 나쁜 개그는 오히려 스토리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집착하지 말고 자신 없으면 빼자. 그럼 중간은 간다.
- 정확한 글쓰기, 테크니컬 라이팅 (기술 분야의 매뉴얼이나 가이드 작성, 사용자 인터페이스 텍스트 작성)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재밌기도하고 내 전공과 관련해서 특히 UI텍스트를 작성할 때 많은 도움이된다.
- 메모는 다양한 형태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엮고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기록은 블로그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취향이나 도메인 지식이 넓고도 깊어지는 것 같다.
- 글쓰기는 내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사람마다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선택한 것은 글이다. 글 쓸 때가 디자인을 하거나 기타 어떤 기획서를 작성할 때보다 즐겁고 무엇보다도 나는 디자인보다 글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